DirTy™의 일본이야기 22

12. 그리고...후에

그리고...후에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그동안 못만났던 친구들,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며 당분간 쉬기로 하였다.집에서도 당분간은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으셨다. 이 후 3개월정도는 한달에 한번 일본으로 실업급여를 받으러들어갔다. 2번정도는 아는형님의 집에서 묶고 한번은 신오오쿠보의 한국PC방에서 날을 세기도 했다.한국에서의 취업은 참으로 어려웠다. 일본에서의 경력을 인정 못해주는 회사들이 많았다.그래서 일본회사들을 많이 알아봤었는데 일본에서 받던 연봉만 생각하다 전부 다 놓치는 상황이 발생했다.한국회사들은 그보다 연봉이 현저히 낮았다. 경력도 깍는 회사가 많았다.그렇게 한국에서 쉰지 10개월여 만에 경력을 좀 깍고 현재 다니는 회사에 들어왔다.한국에 들어온지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걸 생각해보면 시간은 참..

11. 굿바이 일본

굿바이 일본동일본 대지진 이후 잠시 서울로 돌아갔다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다.사실 내가살던 사이타마현의 동네는 전혀 피해가 없는 지역이었다.돌아왔을 때 이미 모든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우선 오사카에 있던 형님이 올라오기로 예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예정대로 계속 집을 알아보았다.또 직장도 계속 알아보았다. 그 와중에 부모님은 계속 돌아오라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어떻게 해야하나 계속 고민을 했다. 결론은 결국 한국 귀국행이 되었다.'한국으로 돌아가자. 이번이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서였다.처음에 일본에 올때도 짧게 1~2년정도 경험하다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지내다보니 4년이라는 시간이지난것도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살이라도 젊을 때 돌아가는 것..

10. 천재지변, 고민

천재지변 2011년 2월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남아 지인과 함께 삿뽀로 눈축제를 갔다. 일본에 있으면서 홋카이도에 가보는 건 처음이라 많은 기대와 함께 일본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여 비행후 삿포로의 신치토세 공항이 보일 무렵 창밖을 보니 온세상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숙소는 스스키노 전역인 나카지마코엔역 이었던것 같다. 홋카이도는 온통 눈밭이었다. 너무 좋았다. 삿포로 눈축제는 정말 엄청난 규모의 눈 조형물과 수많은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세계의 축제라는 것을 눈으로 실감 할 수 있었다. 또 바로 옆 스스키노에서는 얼음축제를 하였는데 이또한 아기자기 하게 볼것이 많았다. 삿뽀로 눈축제는 꼭 한번쯤 가보길 추천하고 싶다. 추운지방의 해산물은 정말 맛이 끝내준다!! 여기서 먹었던 해산물이 일본생활에서..

9. 군마, 일상, 변화

군마 군마 오오이즈미 마치.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일단 군마에서는 내가 타던 오토바이를 도둑 맞았다. 일본 혼다에서는 도난 당하면 80% 였던가 돈을 대주는 보험이 있어서 다행히 20%돈만 지불하고 같은 오토바이로 받을 수 있었지만 쓸데없는 돈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또,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건 사람. 회사에서가 아니면 사람을 볼기회가 많이 없었다. 지하철역은 토부 코이즈미선의 니시코이즈미 역에서 내리면 되었는데 난 이곳에서 한량짜리 열차를 처음봤다. 한량짜리 열차에도 사람이 없다. 친구놈이 우리집에 있으면서 했던 말이... "야, 밖에 사람 지나간다" 였다. 워낙 시골이다 보니 어딜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끔 마실이라도 나가서 걸어 다니는 사람을..

8. 친구의 일본 입성

친구의 일본 입성 2007년 4월에 입국 및 입사하여 2007년 11월에 퇴사. 그후 바로 산텍이라는 회사로 입사. 참 단기간에 많은 일이 있었다. 군마로 이사 후 적응 할 기간도 잠시... 소리소문 없이 연말이 다가왔다. 한국으로 가기는 사실 엄두도 나질 않았고 한국에서 같이 일본취업반 수업을 듣던 친한 몇몇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나고야에 가보고자 하여 일본에서 심야버스를 탔다. 이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예약티켓을 프린트하여 신주쿠 서쪽출구 한켠에 주차해 있는 수많은 고속 버스들 사이에 내가 탈 버스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겨우겨우 탑승하여서도 충격의 연속 이었는데... 일단 고속버스 안에 화장실이 붙어있는것이 가장 충격적 이었고 휴게소를 정말 많이 들렀다. 좌석도 각각 1열씩 떨어져 ..

7. 두번째 회사, 희망

두번째 회사 두번째로 다니게 된 회사는 サンテック(SANTEC) 이라는 산요전기(三洋電機)의 자회사로 산요쪽에 계약직으로 파견을 꽤나 많이 보내고 있었다. SANTEC에서도 내가 입사를 하게 되면 군마현 오우라군에 위치한 산요전기 동경제작소로 가서 일을 하게 될 거 라는 말을 들었다. 입사한 나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군마현 오우라군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일본에서 첫월급을 받자마자 줌머라는 스쿠터를 샀었고 책상, 의자 냉장고... 등등 생활용품들도 거의 다 갖췄던 시기라 이삿짐 센터에 의뢰하여 이사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만 해도 일본에서 지낸지 1년도 안된상태라 어리버리 했던 나는 힘겹게 인터넷으로 이삿짐 예약을 하였고 생각보다 이사비용이 많이 들었던 기억만 ..

6. 첫 회사의 도산, 고민

첫 회사의 도산 일본에 도착 했을 당시의 PDS의 재정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수 있었다. 앞에서도 몇차례 말했지만 재정상태에 다급한 나머지 우리를 아주 빠르게 현장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에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다. 첫 현장에서 6개월 계약 만료 후, 연장계약은 없었고 우리는 곧바로 본사로 출근 하였다. 처음 일본에 왔을때의 본사는 동경내에 있었는데 단 몇개월 만에 사이타마시로 이전을 했고 장소는 사이쿄선이나 카와고에선(埼京線or川越線)의 닛신(日進)역에서 도보로 10여분 정도 떨어진 곳 이었다. 가는길은 때마침 한창 도로 공사를 진행중이여서 가기도 번잡했고 근처에는 마땅한 식당조차 없어 거의 편의점 도시락이나 근처 허름한 츄카(中華)(중식) 식당 에서 떼우기 일수였다. 우리가 지내던 요..

5. 첫 출근, 요코하마 생활기

첫 출근 일본의 지하철 복잡도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엄청난 복잡도를 자랑한다.(이것도 자랑인가? -_-;;) 특히 동경 및 인접지역의 노선도는 복잡하기 그지없고 사설 라인은 또 왜그렇게 많은건지 갈아타는 것만으로도 초심자에게는 버겁다. 우리넷은 아침에 만나 적응되지 않는 지하철 역사에서 티켓을 끊고 몸을 실었다. 2007년 4월7일에 일본에 발을 딛여 이틀 뒤인 4월9일, PDS에서 계약한 파견처인 후지소프트 본사가 있는JR사쿠라기쵸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후지소프트 라는 회사는 당시 일본내에서 소프트웨어 업체에서는 TOP10안에 드는 대기업이었다. 정확히 몇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PDS의 직원과 JR사쿠라기쵸역 부근에서 만났다. 그는 곧장 우리를 후지소프트 본사로 데리고 갔다. 후지소프트 본사는 ..

4. 출국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 발을딛다, 생활의 시작

출국,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 내정을 받은 뒤, 일본으로 가기위한 준비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이, 여권과 여벌의 옷 그리고 프로그램 서적 정도였다. 내정을 받은 회사는 동경에 소재하고 있는 PDS 라는 한국계 회사였다. 사실 무슨일을 하는 회사인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딱히 없었다. 그저 중소기업에 IT 관련 업체이고 산업인력공단에 엮여 있으니 막장 회사는 아닐거라 생각했다. 2007년 4월 7일... PDS에 입사하기로 한 네명이 인천국제공항에 모였다. 남자가 셋, 여자가 하나. 부모님들 또한 전부 마중을 나오셔서 인사를 하고 그렇게 생애 첫 비행기를 타러 들어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지나 일본 나리타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3.준비, 사람들, 커리큘럼, 면접

준비 교수가 추천해 준 과정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진행하는 일본취업 Embedded Software Engineer과정 이었다. 기간은 2006년8월부터~ 2007년4월까지 과정이었고 물론 200만원 이라는 수강료도 있었다. 학생에게 200만원은 적은돈이 아니었기에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 설득은 간단했다. 니가 목표로 한다면 가라고 하시며 선뜻 돈을 내주셨다. 장소는 한국산업인력공단 내의 교육장에서 진행되었고 교육은 샬롬IT인재개발원(현재 코세아인재개발원)에서 맡았다. 일본취업과정을 받는 학생들은 과교수들이 2학기때 안나와도 되도록 배려해주었다. 사람들 2006년 8월 21일 더운 여름. 첫시간 또 첫만남. 총 30명의 모집인원으로 채워진 강의실 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