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Ty™의 일본이야기/DirTy™의 일본생활기

7. 두번째 회사, 희망

DirTy™ 2016. 9. 27. 14:40

두번째 회사

두번째로 다니게 된 회사는 サンテック(SANTEC) 이라는 산요전기(三洋電機)의 자회사로 산요쪽에 계약직으로 파견을

꽤나 많이 보내고 있었다. SANTEC에서도 내가 입사를 하게 되면 군마현 오우라군에 위치한 산요전기 동경제작소로

가서 일을 하게 될 거 라는 말을 들었다.

입사한 나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군마현 오우라군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일본에서 첫월급을 받자마자 줌머라는 스쿠터를 샀었고 책상, 의자 냉장고... 등등

생활용품들도 거의 다 갖췄던 시기라 이삿짐 센터에 의뢰하여 이사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만 해도 일본에서 지낸지 1년도 안된상태라 어리버리 했던 나는 힘겹게 인터넷으로 이삿짐 예약을 하였고

생각보다 이사비용이 많이 들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사실 요코하마에서 군마현 오우라군까지도 꽤나 먼 거리여서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버거워 인터넷으로 방을 보고 입주 하였다.

처음으로 군마현 오우라군에 있는 산요전기 도쿄제작소로 면접을 보러갔던 날... 한국에서도 살아본 적 없는

엄청난 시골의 풍경에 말이 나오질 않았다. 시골이라 차가없으면 돌아다니기 어려울 정도 였고

인도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대부분 차량으로 이동)

다행히 스쿠터를 샀었기에 망정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산요전기 냉열기술개발센터의 시바타라는 과장과의 인터뷰에서  외국인을 써본 이력이없어

불안하다 라는 말을 듣게 되고도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과장위의 부장이 순전히 제일 교포였기 때문인듯 하다.

나이가 지긋한 부장이었는데(이름이 기억이 안남.) 산요전기에서 일을 하면서 6개월 정도 지난 후 정년퇴직 했다.

그 부장 덕에 그래도 적응하기 편했고 한국인들이 하는 가게며 한국인들 모임까지도 추천해 주었었다.

이렇게 시간은 물흐르듯이 흘러 시골에 적응도 해가면서... 외로우면 군마에서 동경까지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희망

군마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뭔가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는데 이는 아무래도 넘 시골이라 벗어나려고 했던 이유같다.

일단 일본어를 좀 제대로 하자라는 의지가 생겼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아무리 일본어를 한국에서 배우고 왔다 하더라고

단 8개월여 만에 일본에서 일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배움이다.

사실 이직을 하면서도 일본어가 불안했는데 다행히도 좋은 팀원, 사수들이어서 메일로 보고 할때건

팀 회의를 할때건 내 일본어에 대해서 많이 지적하고 가르쳐 주었다. 메일같은 경우는 프린트로 뽑아와서

빨간줄 그어가며 이러쿵 저러쿵 가르쳐 주었고 회의시간에는 바로바로 지적을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요라는 대기업에서 이정도로 편의를 봐주었던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퇴근시간이 5시로 빠른편이었던 나는 한 아주머니가 하는 조용한

이자카야에 단골이되어 어머니뻘의 아주머니와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말을 주고 받았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가는편이었는데 그시간에는 손님도 없었고

아주머니도 외국인 이라는 걸 안 이후로는 많이 배려해 주셨다. 그 덕에 나도 아주머니에게 한국음식이나

김같은걸 많이 드리기도 했다.(아주머니는 서비스 음식 주시고 ㅎㅎㅎ)

또 하나는 일본에서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 보자 였다. 얼마나 일본에서 지낼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최대한 기회가 된다면 많이 돌아다녀 보는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덕에 나중엔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런 생활에 적응해 가며 점점 일본생활에 대한 자신감, 또 계속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감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