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Ty™의 일본이야기/DirTy™의 일본생활기

10. 천재지변, 고민

DirTy™ 2016. 11. 7. 13:36

천재지변
2011년 2월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남아 지인과 함께 삿뽀로 눈축제를 갔다.
일본에 있으면서 홋카이도에 가보는 건 처음이라 많은 기대와 함께 일본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여 비행후 삿포로의 신치토세 공항이 보일 무렵 창밖을 보니 온세상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숙소는 스스키노 전역인 나카지마코엔역 이었던것 같다. 홋카이도는 온통 눈밭이었다. 너무 좋았다.
삿포로 눈축제는 정말 엄청난 규모의 눈 조형물과 수많은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세계의 축제라는 것을
눈으로 실감 할 수 있었다. 또 바로 옆 스스키노에서는 얼음축제를 하였는데 이또한 아기자기
하게 볼것이 많았다. 삿뽀로 눈축제는 꼭 한번쯤 가보길 추천하고 싶다.
추운지방의 해산물은 정말 맛이 끝내준다!!
여기서 먹었던 해산물이 일본생활에서 먹었던 해산물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리프레시 여행으로 홋카이도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추운것만 빼면)
리프레시 여행후 동경쪽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 또 이사를 하기위해 분주한 나날이 이어졌다.
또 오사카에서 지내던 친한 형님을 꾀어(?) 동경쪽에서 같이 지내며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제안하였다.
형님이 오사카에서 지내고 있으니 일단 집은 내쪽에서 둘이 살만한 집을 구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렇고 친한형님도 오사카에서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동경으로 이직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실업급여를 받기위해 서류를 정리하고 센터를 방문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 심적으로
많은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동경쪽 UR임대주택을 검색해 저렴한 몇군대를 점찍어놓고
일반 부동산에도 전화를 걸어 꽤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저렴한 곳으로만.
그렇게 빠르게 시간은 흘러 2011년 3월 11일의 오후 3시경.
여전히 이직활동과 부동산 및 UR임대주택 검색, 또 짬나는 시간엔 게임을 병행하며 집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미약한 지진을 감지했다. 원체 일본은 지진이 많은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떨림이 발생했다. 난생 처음으로 엄청난 지진에 놀란터라
집이 1층이었던 나는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곳에 1년넘게 살았어도 본적도 없는 옆집사람을
그날 처음으로 지진이 나는 상황속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온땅이 흔들리고 전기가 나간건지 근처 가게들 자동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서있기조차 힘들정도의 떨림이었다. 이후 소강상태에 긴장을 풀자 다시금 엄청난 떨림의 지진이
다시 한 번 발생했다. 무서웠다. 지진나면 이래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갔다.
건물 주민들은 밖에서 모두 불안해 했다. 그렇게 얼마 후 지진이 멈추고 그제서야 옆집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옆집사람(나)이 외국사람인줄 몰랐다고 했다. 자기도 살면서 이렇게 큰 지진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놈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대박 큰지진 났다라고 말해주었더니
친구놈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곧 통신망이 단절된건지 통화가 잘 되지않았다.
무섭고 불안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전기가 나갔다. 가스도 나갔다. 마침 어두워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걸어서 3분거리에 있는 키타코노스역으로 가봤다. 전기가 끊겨서 열차가 멈춰섰다.
열차가 움직이지 않자 많은 사람들이 역밖으로 나왔다. 한바탕 난리가 나니 택시조차 잡기 어려운지
시민들은 연신 발만 동동 구르며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었다. 허나 설상가상 통화가 안되니 어떻게 할수가 없다.
잠시후에 인근 경찰에서 대민지원 형식으로 나온건지 역앞에 모여있던 많은 사람들을 인근학교로 데리고 갔다.
나도 저길 따라갈까? 라고 생각하다 그건 아닌것 같아 집으로 돌아갔다.
3월달이라 아직은 추운 날씨였다. 가스, 전기가 끊긴 마당에 여기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일단 귀중품과 여권, 핸드폰, 핸드폰충전기, 후지산여행갈때 사뒀던 손전등을 가방에 챙기고 옷을 따뜻히 입고
그나마 가까운곳에 사는 전회사 사수가 살고있는 쿠마가야역으로 걸어갈 생각을 했다.
걸어서 가본적없는 쿠마가야까지 일단 걸어가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려고도 했지만 택시가 잡히질 않는다.
아니 아예 택시가 없다. 무작정 도로로 나가 이정표를 보며 천천히 걷다 보니 저멀리 쿠마가야역이 보이기 시작.

다행기 전기가 들어오는지 쿠마가야역은 밝았다. 약 4시간여를 걸어 쿠마가야 역에 도착하여 배가고파

지진때문에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전사수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전사수가 괜찮냐며 안부를 물었다. 오늘 하루만 신세좀 지면 안되겠냐고 하니 흔쾌히 오라고한다.
다행히 전사수도 혼자사는 터라 간단히 맥주한캔씩 하며 뉴스를 보며 계속 사태를 예의주시 했다.
계속되는 여진에 불안하여 잠도 안오고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다음날 열차는 운행되기 시작했고 전사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정리안된 나의 집으로 되돌아 갔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진으로 몇일간 잠을 제대로 청할수 없었다.

 

고민
동경쪽으로 이직, 이사하여 오사카에서 올라올 형님과 같이 지낼생각이 지배적 이었지만
지진 이후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주위에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또 부모님께서도 연신 불안하신지 자꾸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일단 한국으로 한번 들어갔다. 계속 들어오라고 강요하신다.
사실 일본 현지에서는 해안가 지역이 쓰나미로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다른곳은 피해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없었다. 해안가 지역이 아닌곳은 방사능오염에 대한 이야기가 흘렀지만 사실 첨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본 언론에서도 심각하게 이야기를 다루지도않았었다.(이때 일본에서 피해를 감춰서 후에 엄청난 문제가 됐지만.)
해외토픽에서는 해안가의 피해상황과 방사능오염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뉴스로 내보내니
자식가진 부모입장에서는 돌아오라고 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부모님 께서는 너무 단호 하셨다.
크게 말씀을 안하시던 아버지께서도 돌아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막상 생각해보니 마침 회사도 그만둔 상태고 처음 일본에 갈때 생각 한 것 보다 많은 시간이 지난걸 생각해보니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갈 타이밍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딱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일본으로 돌아 온 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심려 깊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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